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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연구 노하우, 직장생활 등 일상 속 경력개발 이야기를 공유해보세요.

  • 김태종
  • 2025.06.21 21:16:26
  • 추천수
  • 조회수 1,817
  • 댓글 작성수 11

□ 20년 만의 이별, 그리고 막막함


2019년 2월, 손이 떨렸다. 20년 동안 청춘을 바친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이었다.

A4 용지 한 장에 담긴 내 결정. 그 가벼운 종이가 왜 이렇게 무거운지. 내가 과연 옳은 선택을 하는 걸까? 


"아니, 김 소령! 정년까지 2년 남았는데 왜 나가려고 해? 미쳤어?" 주변의 만류가 빗발쳤다. 맞다. 객관적으로 보면 미친 짓이었다.

공군 소령, 5급 공무원(사무관) 상당의 대우, 안정적인 직업, 괜찮은 연봉. 그런데 왜 나는 이 모든 걸 포기하고 나가려는 걸까? 


1999년 3월, "배우고 익혀서 몸과 마음을 조국과 하늘에 바친다"는 표어를 보며 공군에 입대했던 스물세 살 청년. 그때의 나는 정말 순수했다.

하늘을 지키는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고, 실제로 20년 동안 청소년들에게 하늘과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일을 했다.

Space Challenge(구.모형항공기) 대회와 항공시뮬레이션대회를 운영하고, 항공우주캠프를 총괄하며 수천 명의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며 ‘아,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라고 확신했던 순간들이 생생하다.


공군 전투기 탑승 기념사진

[그림1] 공군 전투기 탑승 기념사진


열심히 일한 결과? 국방부장관 표창, 국토교통부장관 표창,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상장함이 가득 찼다.

언론 홍보 유공, 조직 발전 유공, 교육 유공, 독서문화 진흥 유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김 소령, 이번에도..." 인사담당 선배의 말끝이 흐려졌다. 진급심사 탈락. 이미 5번째였다.

내 능력 부족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눈 앞이 캄캄했다.  



 진급의 벽, 그리고 현실


"태종아, 진급이라는 게 말이야..." 선배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씁쓸하게 말했다.

"업무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출신, 성별, 인맥, 그리고 무엇보다 운이 따라야 해.

너처럼 사관학교 출신도 아닌 지방대 출신에, 특별한 연줄도 없고, 그저 묵묵히 일만 잘하는 사람은… 어렵지." 


속이 쓰렸다. 소주 때문인지, 현실 때문인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나는 그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계급정년 45세. 어차피 2년 후면 강제로 나가야 한다.

그럼 차라리 한 살이라도 젊을 때, 43살에 나가서 사회에 부딪혀보는 게 낫지 않을까?

비록 군대 밖 세상은 미지의 영역이었지만, 더 이상 성장의 기회가 없는 조직에 머무는 것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아빠, 정말 괜찮아요?" 고1 첫째와 중2 둘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가장으로서 무책임한 선택일까? 밤새도록 고민했다.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도전적인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맞을까.

결국, 더 이상 조직 내에서 성장할 수 없다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대로 안주했다가는 아이들에게도 더 이상 멋진 아빠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덩그러니 던져진 43살 아저씨


현실은 냉정했다. 지방국립대에서 신문방송학 전공, 20년간 공군 공보정훈장교.

이력서 한 줄로 요약되는 내 인생이 사회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마치 보호막 없이 맨몸으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덩그러니 던져진 느낌이었다.


"경력이 특이하시네요. 근데 저희가 찾는 인재상과는..." 수백 통의 채용지원서를 보냈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 스타트업, 공공기관까지 가리지 않고 지원했지만, 답은 한결같았다.

"귀하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제발 그런 기원 말고 일자리를 주세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군 복무 중에도 틈틈이 공부했다는 거였다.

연세대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방문학자 생활도 했다.

그리고 전역 3개월 전에 마침내 국립공주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들이 없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너 박사학위 받았다며? 우리 연구소에 잠깐 와서 일해볼래?" 먼저 전역해서 교수가 된 선배의 제안이었다.

고마웠다. 비록 임시직이었지만,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는 면했다.

선배의 배려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왜 하필 뉴스 빅데이터였을까: 내향형 INFJ 홍보 장교의 고뇌


박사과정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나의 MBTI는 INFJ다. 극도의 내향형. 혼자 조용히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군에서 20년간 한 일은? 언론 대응과 홍보.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MBTI 'INFJ' 성격유형

[그림2] MBTI 'INFJ' 성격유형 (출처: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C%84%B1%EA%B2%A9%EC%9C%A0%ED%98%95-infj)  


"김 소령! 또 사고 났어! 기자들 몰려온다!" 사망사고, 추락사고, 비리, 민원…

나쁜 일이 터질 때마다 현장에 나가고,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하고, 때로는 엄청난 욕도 대신 먹었다.

어떤 이들은 홍보 담당자를 이렇게 불렀다. "X바가지 전문 담당자" (당시 정말 적절한 표현처럼 느껴졌다!)

밤낮없이 쏟아지는 전화와 현장 출동, 그리고 국민들의 비난 속에서 내향적인 나는 점점 지쳐갔다.

홍보의 뿌듯한 보람보다는 부정적으로 소모되는 감정이 훨씬 컸다.


그래서 박사과정은 그동안 공부했던 언론학 대신 교육학으로 선택했다. 평생교육을 전공했다.

영유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평생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 비로소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론과 실천이 함께 어우러지는 평생교육의 매력에 푹 빠졌다.


문제는 논문이었다. 석사 때의 논문 주제는 "위험사회와 언론의 안보보도에 관한 연구"였다.

신문기사를 대상으로 '내용 분석'이라는 방법을 썼다. 즉, 나는 연구 방법으로 뉴스 분석밖에 할 줄 몰랐던 거다.


"평생교육 관련 뉴스를 분석해서 논문을 써보는 건 어떤가?" 수업시간 교수님의 제안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건 뉴스 분석이니까! 반가운 마음에 무작정 평생교육 관련 뉴스를 모아봤는데… 헉! 수만 건이었다.

석사 때처럼 수백 건을 일일이 읽고 분석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막막했다. 내 기존 방식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양이었다.



 찐문과생의 코딩 도전기: 에러와의 사투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뉴스 빅데이터 분석 교육 과정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희망을 품고 2개월간 주말마다 공주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찐문과생인 내게는 R이라는 프로그램도, 코딩이라는 개념도 모두 외계어 같았다.


R> install.packages("topicmodels")

> library(topicmodels)

Error in library(topicmodels) : there is no package called 'topicmodels'


??? 분명 강사님이 시키는 대로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했는데? 화면 가득 뜨는 빨간색 에러 메시지에 머리가 하얘졌다.

강사님께 달려가 물으면 돌아오는 건 이런 말들뿐이었다.


"따옴표가 잘못됐네요. 큰따옴표 말고 작은따옴표로 다시 해보세요."

"아, 오타가 있네요. 대문자 'L'이 아니라 소문자 'l'이에요."

"세미콜론이 아니라 콤마예요… 스페이스바는 한 칸만 띄우셔야 해요."


코딩의 어려움

[그림3] 코딩의 어려움 (Image generated with Gemini 2.5)


이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나를 좌절시켰다. 찐문과생에게 코딩은 외계어였다.

수업 내내 강사님의 설명을 듣고, 따라 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수료증은 받았지만, 머릿속은 텅 비어있었다.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자기 의심이 끝없이 밀려왔다.


그러다 발견한 게 넷마이너(NetMiner)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노코딩으로 텍스트 분석이 가능한 프로그램이었다.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방식으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키워드를 정제하고, 토픽 모델링 분석을 수행한 뒤 결과를 엑셀로 제공해주는,

나 같은 문과생에게는 그야말로 한 줄기 빛이자 혁명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가격이 좀… (당시 내게는 숨 막히는 가격이었지만) 에라 모르겠다! 지르자! 연구를 수행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투자쯤이야!

그렇게 다시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 넷마이너 사용법을 수강했다.



 주말마다 사라지는 아빠: 가족의 든든한 지원


"아빠, 또 서울 가요?" 주말마다 넷마이너 교육 받으러 서울행. 공주에서 서울까지의 왕복 시간도 만만치 않았지만,

사춘기 아들들은 아빠가 필요한 시기인데… 미안함이 앞섰다. 아빠로서 든든히 옆에 있어주고, 함께 대화하며 추억을 쌓아야 할 시기인데

늘 자리를 비우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여보, 미안해. 이번 주도..." 아내에게 미안함을 전하면, 아내는 늘 같은 말로 나를 격려했다.

"괜찮아요. 열심히 배워서 멋진 박사 아빠 되어주세요. 우리가 당신 믿잖아요." 혼자서 두 아들을 케어하느라 얼마나 힘들까.

평일에는 직장생활, 주말에는 홀로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내의 깊은 이해와 믿음, 그리고 두 아들의 걱정 섞인 응원은 미안함을 동력 삼아 더욱 열심히 배우게 했다.

다행히 넷마이너는 찐문과생인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었다. GUI 방식으로 클릭클릭만 하면 분석이 됐다. (이게 바로 노코딩의 매력!)

드디어 혼자 힘으로 뉴스 빅데이터를 대상으로 토픽 모델링 분석과 텍스트 네트워크 분석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깨우친 듯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빅데이터 분석 가능

[그림4] 드디어 빅데이터 분석 가능! (Image generated with Gemini 2.5)



 "그 따위 연구방법이 어디 쓸모 있겠냐": 상처와 성장


이렇게 힘들게 연구하고 작성한 내 박사 논문 제목은 "뉴스 빅데이터를 활용한 평생교육 담론 분석"이다.

물론, 당시 교육학 평생교육 분야에서는 빅데이터 분석, 머신러닝, 텍스트 마이닝 분석과 같은 연구 방법론이 매우 생소했다.

첨단 기술보다는 전통적인 인문사회과학 연구 방식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였다.


"김 선생, 빅데이터? 텍스트마이닝? 그 따위 거 어디에 써먹겠어? 평생교육 연구는 자고로 문헌 분석, 설문 조사, 심층 인터뷰,

질적연구를 해야 제대로 된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는 거야!" 전체 연구미팅에서 한 교수님의 일갈.

수많은 동료들 앞에서 내 연구를 '그 따위 것'이라고 폄하하는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연구실을 떠났다.

내가 선택한 길이 정말 틀린 것이었을까. 막막함과 외로움이 나를 감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내 호기심이 이끄는 길을 가보기로 결심했다. 


이런 노랫말도 있지 않던가!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김광석, '바람이 불어오는 곳')



 시간이 답을 주더라: 늦깎이 연구자의 뿌듯함


그로부터 몇 년 후, 나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과학데이터교육센터 박사후연구원으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의 한 대학 평생교육 전공 석사과정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선생님이 김태종 박사님이세요? 저희 지도교수님이 박사님 논문을 꼭 읽어보라고 하셨어요.

이제는 교육학에서도 빅데이터 분석이 꼭 필요하다고..."


"지도교수님이 박사님처럼 텍스트마이닝으로 논문 쓰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학생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그 따위 연구"라고 핀잔 받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때의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AI, 빅데이터, 머신러닝이 교육학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내가 욕먹어가며, 외롭게 개척했던 그 길을 이제는 많은 후배들이 따라오고 있다.

내가 뿌린 작은 씨앗이 이렇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다.



 그래서, 40대에 연구자가 되기로 했다


20년 군 복무, 5번의 진급 탈락, 43살의 늦은 시작.

찐문과생이 코딩에 좌절하고, 노코딩으로 겨우 박사 받고, "그 따위 연구"라고 무시당했던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지금의 나는? 국립기상과학원 인공지능기상연구과에서 교육과 홍보, 정책기획 및 대외협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역 후 5년 동안 32편의 논문과 8권의 책을 발표했고,

KIRD 작가가 되어 이렇게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있다(세부 연구실적은 구글에서 '김태종'으로 검색하면 맨 위 리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순탄치 않은 길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 결과다.


2024 한국기상학회 학술대회 포스터 발표

[그림5] 2024 한국기상학회 학술대회 포스터 발표 (연구명: LDA 토픽 모델링을 활용한 글로벌 기상 분야의 인공지능 연구동향 분석)


누군가는 묻는다.

"왜 그 나이에 그런 모험을 했어요?"

글쎄, 그때는 몰랐다. 그저 막막하고 두려웠을 뿐. 하지만 지금은 안다.


늦어도 괜찮다. 

방향이 맞다면, 언젠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고 있는가?

나이가 많아서, 전공이 달라서, 실패가 두려워서 망설이고 있다면, 내 이야기가 작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분명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다음 회에서 계속됩니다.)

댓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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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필승! 저 또한 공군 정훈공보과와 인연이 깊은 사람입니다. 박사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
2025.08.04 10:55:00
원더
에너자이저 김박사님~ 다음 편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5.07.11 16:31:42
김태종
기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 편도 열심히 작성하겠습니다~^^
2025.07.11 16:53:01
우아리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 얘기를 이렇게 진솔하게 풀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는 동안 도전도 되고 눈물이 핑(~ ~)
연재가 너무 너무 기대가 됩니다. !!!
2025.06.24 09:19:38
김태종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라 도움이 안될까 걱정했는데,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2025.06.24 21:06:38
KIRD Global
인트로부터 진솔한 이야기에 몰입감 200%! 끝없는 성장 스토리에 다음 이야기가 기대됩니다+_+
2025.06.23 09:37:47
김태종
기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2025.06.23 15:20:48
러너
"늦어도 괜찮다. 방향이 맞다면, 언젠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말,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 너무 기대됩니다!
2025.06.23 09:32:25
김태종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이야기로 찾아 뵙겠습니다!
2025.06.23 15:21:23
내가해냄
와.... 5년동안, 32편의 논문과 8권의 책을 발표했다는 부분만으로도 태종님께서
얼마나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경력전환 및 경력개발에 몰입하셨는지 전달됩니다.

대단하십니다. 다음 이야기도 너무 궁금합니다.
긍정에너지 팍팍!!
2025.06.23 09:31:20
김태종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분들과 협업한 덕분에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께 긍정 에너지를 전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25.06.23 15: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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